13. bare tress / Park Wan Seo

2018.10.22 16:11

전쟁을 기억하며 상실과 마주하다

- bare tress, Park Wan Suh, 1970-


이 소설은 6·25 전쟁 시기 서울이 수복된 직후를 배경으로 미군 부대 안의 초상화 가게에서 근무하는 스무 살 이경이 경험하는 전쟁의 상흔과 사랑, 예술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경이는 불우한 옥희도의 예술 세계에 초점을 맞춰 황폐한 삶 속에서도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그린다. 이와 동시에 자신 때문에 전쟁 중 두 오빠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이경의 복잡한 내면을 담은 자기 성장적 소설이기도 하다.



“까닭 모를 신열과 혼수상태가 며칠씩 계속 되었다. 그럴 때는 굳게 닫힌 입술이 숭늉도 거부했다. 나는 급히 큰댁에 연락하고 큰아버지가 보낸 의사가 묵묵히 주사를 놔주고 가면 나는 병상에서 밤을 새웠다.”


“빛나던 어머니의 눈이 점점 귀찮다는 듯이 게슴츠레 감기며 나에게 잡혔던 손을 슬그머니 빼내고 부스스 돌아높더니 휴 하고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이 책에서는 한국 전쟁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었고, 상실의 슬픔을 애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애도의 불가능성은 ‘어머니’를 통해 보여진다. 끔찍한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돌봄이 필요한 경아가 있음에도 무기력했고 넋이 나간 체 기억 속에 아들과 자신을 가두어버린다. 불우한 현실 앞에서 작은 희망조차 볼 수 없었던 그는 마침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으며 자신의 딸에게 조차 냉대한다. 어머니의 애정 없는 태도와 마음에 상처를 준 말 한마디에 실망한 경이는 분노로써 가족에게 답한다.


프로이트가 발표한 논문 <애도와 우울증>에 의하면 애도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 여기에 동반되는 우울증은 심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낙심,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단,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빠졌을 것이 분명하다.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여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의 무기력함이 더해져 자신은 더욱 고립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어머니는 충분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경에서 조차 마음을 떠나보낸 것은 아닐까. 


아버지의 사망 이후 이경은 그 동안 받은 애정을 어머니에게 기대하지만 어머니는 이마저도 거부한다. 애정을 줄 수 있는 내적 에너지를 아들들의 죽음과 함께 잃었기 때문이다. 딸은 어머니의 냉담한 반응과 무관심을 내면화하여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이 분노로 표출되고 만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체가 외부 대상을 상실했을 때 그 빈자리를 다른 대상으로 잘 채워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동일 시 해온 두 아들의 죽음, 즉 자신의 일부를 상실했다면 먼저 두 아들을 분리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현실 판단력과 그 죄책감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실의 대상을 동일시 할 경우 애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우지면서 어머니와 같은 우울로 진행되고 가족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구멍 근처에 걸려 있던 덩어리가 뜨겁게 콱 치미는 걸 의식하며 막 상을 들고 나가려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기 마련 아녜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이경은 소원해진 어머니의 관계를 해결하고자 오빠에 대한 이상화를 철회하고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멈추려 한다. 더 이상 오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그 대상을 떠나보내려 한 것이다. 그 한 방법으로 어머니 내면에 깊숙이 남아 있는 두 오빠라는 존재를 의식적으로 끄집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의 내면을 회복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끝내기 위한 방법으로 상실한 대상을 무의식 안에서 수용하고, 파편화된 대상의 이미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상실한 대상을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 있고, 그 대상에게 내주었던 리비도를 다른 대상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를 애도과정이라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애도와 우울증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 내면에 숨겨진 그림자를 새로운 빛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대상의 그림자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 대상의 그림자는 결국 오빠의 방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어머니가 상을 들고 나왔다. 그제서야 나는 눈투성이의 구두를 벗으며 건넌방에까지 불이 켜져 있음을 알았다. 나는 섬뜩 놀라 옷의 눈을 털지도 않은 채 건넌방 미닫이를 열었다. 늘 걸려 있던 기타가 방바닥에 뒹굴고, 몇개나 되는 사진첩들이 모두 펼쳐진 사이로, 사진들까지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데 한쪽에는 유도복이 똘똘 뭉쳐져 있었다. 나는 그 유도복에서 체온을 직감했다. 

딸에 대한 기다림을 잊게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유도복을 품에 품고, 사진을 보며 기타를 튕기며, 나는 목구멍으로 왈칵 치밀어 오르는 연민인지 분노인지를 모를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 방에서 그의 흔적을 찾으며 두 아들을 현실로 끊임없이 소환한다. 아들의 흔적에 머물기 위해 아들이 성장했던 방을 고스란히 재현해놓고 그 방에 들어가 아들의 그림자와 함께 한다. 어머니에게 ‘방’이라는 공간은 그 대상과 접촉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이자 실존의 의미로 보여 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방이 사라지고, 물건이 훼손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과정의 반복은 결국 애도를 어렵게 만들고 자신을 더욱 고립시키는 동시에 현실의 존재로 회복하려는 이경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만든다. 이경 오빠의 ‘방’은 가족 간 심리적 대립 현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의 해결점은 어머니가 자신의 현재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가 어렵다. 실제로 이경은 엄마와 몸싸움을 하면서까지 오빠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 엄마에게 ‘오빠의 죽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는 직면의 과정을 경험하게 하려 보인다. 그러나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강제로 애도를 끝내려는 행위는 폭력만을 남겼고 이경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만약, 이경이 어머니에게 애도를 할 수 있도록 안정된 ‘분리’와 ‘직면’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면 어땠을까. 어머니가 전쟁으로 잃은 두 아들은 수십 년 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떠나보내면서 미처 전하지 못한 미안함의 메시지가 남아있을 수도 있고, 두 아들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하나의 애도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다. 어머니가 가장 편안한 사람들을 초대해 안정된 공간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울분을 충분히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로써 자신의 애도가 존중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닫혀진 마음을 열 수 있는 첫 번 째 시도로써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회복한 주변 이웃들로부터 뜻 깊은 조언 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어머니 스스로 복잡한 마음을 해결해나가는 좋은 방법임과 동시에 자녀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나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경의 가족은 전쟁의 폭력성이 만들어낸 잔인한 상실의 고통을 경험했다. 그 비극 앞에서 슬픔과 아픔을 느꼈고 애도라는 중요한 과정을 경험했다. 두 아들을 가슴에 묻어 둔 체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세월이 지난 뒤에도 아직 어머니의 무관심한 태도로부터 이경이 느끼는 서운한 감정이 그 답을 말해준다. 물론 어머니가 두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감정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남아있으며 어머니도 또한 누군가에게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다. 이러한 인식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실을 경험한 주체가 슬픔을 딛고 치유의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시작점 될 것이며 남은 가족들이 앞으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내적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나목
국내도서
저자 : 박완서
출판 : 세계사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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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2018. 10. 01 ~ 10. 22 (3주간), 집에서 읽고 쓴 글




작성자

Posted by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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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 Magazine Editor. #therapist, #writer, #photographer ㅡ to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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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2 17:07 신고

    이제 소설책은 많이 읽지 않을 것이다.
    업무 관련한 책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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