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채식주의자 / 한강

2018.05.01 18:37

한강의 채식주의자 

- 다름에 대한 다수의 폭력 


세계 3대 문학생 맨부커상 인터네셔널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차이에 대한 다수의 폭력을 주제로 한 채식주의자, 예술과 욕망으로 외설의 경계를 말하는 몽고만점, 우리 모두는 정상인가를 묻는 나무 불꽃으로 묶은 연작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영혜를 통해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 ‘나무’가 되기를 꿈꾸며 미약한 존재가 난폭하고 어두운 세상과 어떤 식으로 대결하는지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 내면의 고통과 무의식을 압축하며 ‘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를 위협하는 ‘실재’를 드러낸다. 특히 가족 공동체 안에서 ‘실재’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보여지는 측면이 있는데, 언니들이 모인 영혜의 가족들은 혈육애를 통해 그녀에게 고기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그녀를 완강하게 비난하고 부정한다. 이는 실사 부모에 의해 강제적으로 자행되는 ‘할레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영혜의 입을 벌려 고기를 먹이려는 가족들. 특히 영혜의 아버지는 고기를 거부하는 딸의 태도를 부끄러워하며 사위에게 면목 없어 하는데 이는 오랫동안 저작되어온 남성 중심의 육식문화와 폭력의 산물로 표상되는 ‘고기’를 무조건 적으로 수용하려는 전통적 문화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영혜가 이 가부장적 노력을 좌절시킴으로써 ‘아버지 문화’ 또는 ‘폭력의 산물’을 부정한다는 의미를 띈다.  


결국 그녀는 채식주의를 선택함과 동시에 사회에서 철저히 격리된 ‘정신병 환자’가 된다. 가족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 그녀를 부인한다. 그녀를 유일하게 도울 사람인 언니 영혜조차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말미에, 병원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윗옷을 벗어 던진 채 군중의 무리에 둘러싸여 햇살을 쬐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남편, ‘나’가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 (채식주의자, 64쪽), 드디어 그녀에겐 남편조차 ‘타인’이 된 것이다.  

 

2부에서 몽고반점의 화자로 등장하는 영혜의 형부는 쾌활한 성격에 경제적 성공을 이룬 아내를 두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아내보다는 나약해 보이는 영혜에게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 영혜에게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는 순간 그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게 된다. 채식주의와 푸른 반점의 의미지가 결합된 생명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옷이나 신발과 같은 물질적 매력보다 강한 유혹을 발산하는데 영혜의 형부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관계로 고통스러워할 것을 알지만 이에 저항하며 자신의 작품엔 반드시 영혜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은 일반적인 가정과 사회 안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고, 타자들을 수용하는 ‘정신병원’ 외 갈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에는 폭력의 형태로 ‘고립’이 자리한다. 이로서 영혜는 자신의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이자 마조히즘적인 행동으로서 ‘식물’이 되어갈 것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몽고반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혜의 몸에 그려진 꽃으로 더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무가 되고자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면서 상상계적 환상의 욕망이 충족된다. 꽃은 아름답거나 향기로움과 같은 긍정적 이미지로 사람에게 전해지는데 영혜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꽃을 보며 누구도 해치지 않는 자연의 꽃이 되어 모든 폭력으로부터 해방 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제 3부 나무 불꽃은 가정 붕괴라는 파국 이후 드러나는 그들의 욕망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을 담고 있다.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놓은 욕망을 다시 가족의 질서로 처벌하여 우리의 욕망이 가족과 현실, 윤리적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결국 영혜는 정신병원에 갇혔고 남편은 수개월에 걸친 구명 운동 끝에 유치장에서 풀려난 후 달아나버리는 비극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인혜는 동생을 다정하게 돌보는 선량한 모성적 존재이다. 하지만 분명 영혜를 돌보는 보호자인 동시에 동생을 정신병원에 가뒀고, 병원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영혜에게 언니는 정신병원에 오래도록 갇혀 있어야 하는 폭력의 원인인 것이다. 


의사의 진단처럼 영혜는 확실히 미치지 않았다. 미치지 않은 영혜는 자신의 존재가 언니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정신병원에 갇혀 끝없이 주사와 약을 투여 받으면서 갇혀 살아야하는 영혜가 자신의 상황을 통해 깨달은 것은 깊은 무기력일 것이다. 이에 영혜는 자신의 내세울 수 있는 최후의 저항적 행동으로 몸을 축소하고 성을 지우고 나무로 변신하기를 원한 것이다. 또한, 언니 인혜가 그녀의 삶의 질서와 가족의 울타리 안에 영혜 자신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영혜가 내린 결단은 죽음이다. 죽음을 통해 상상계의 어머니인 언니를 지우고 실재계의 표상인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 것이다. 주사를 거부하며 언니의 옷에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영혜의 모습은 끝내 우리의 욕망이 현실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역설한다. 


채식주의자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름을 구별 지으려는 다수의 폭력이다. 사실 영혜는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를 가정과 사회가 다루는 방식은 문제자로 낙인하여 철저히 격리시키거나 물리적 폭력 행한다. 영혜와 가장 밀접했던 세 명의 화자와 정신과 의사조차도 영혜를 낭떠러지 끝으로 밀어버린다. 그나마 영혜의 몸에 그려진 꽃과 잎사귀가 편안함을 주는데 성공한다. 어쩌면 영혜를 위한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강요함으로써 영혜를 더욱 도망가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식물로 표현하자면 처음 영혜는 초록빛으로 보였을 것이다. 남들과는 살짝 다르긴 했지만 일상의 불편함은 아니였다. 그러나 폭력으로 상징되는 어릴적 트라우마들의 기억들은 꿈으로 드러나면서 검고 붉은 빛으로 변한다. 애초에 검고 붉은 빛의 속성을 지닌 체 살아왔으므로 크게 불편할 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의 빛깔로 덮기 위해 일방적인 강요과 집착을 반복하다보니 그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영혜는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동시에 폭력의 저항으로써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를 마주 했을 때 어떻게 대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원화되는 한국사회에서 영혜와 같은 소수와 약자로 규정되는 구성원들에게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공감하고 함께 행동하며 감싸주어야 한다. 




책 읽은 기간 - 2018년 4월 9일 - 14일

책 구입 처 - yes24

ps -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 번더 읽어볼 예정.


채식주의자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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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osted by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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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 Magazine Editor. #therapist, #writer, #photographer ㅡ to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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