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2018.07.15 15:59

상실과 애도 그리고 회복의 시작

-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소설가 박완서는 1990년이 되던 해, 의대를 다니던 자랑스러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다. 평온했던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면서 일상적 감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자 몇 달을 알코올 중독으로 지내며 신을 향한 원망,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 운명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글로 써낸다. 그 통곡과 울음을 낱낱이 적어놓은 책이 바로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따라서 이 글은 자식을 잃은 슬픔과 처절한 슬픔을 그대로 담은 고백이다. 세속을 벗어나 수녀원의 언덕방에서 그 아픔의 순간을 글로 적으며 점차 내면적으로 변화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점은 일종의 자기치유과정과 유사하다. 자기치유는 과거 기쁨이나 슬펐던 일과 같이 일상의 회고를 통해 감정의 흐름을 되짚어 보며 내면의 나를 만나고 미래의 희망을 찾는 과정이다.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적 언어를 글로 적어 감정을 표현하면서 떠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해소하거나 성찰하는 정신은 지극한 애도의 작업이며, 애도하는 부모로써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아직 꿈을 펼치기도 전에 눈을 감은 아들의 죽음은 평온했던 작가의 삶을 송두리 체 바꾸어 놓는다. 아들의 묘를 찾아가지 못할 정도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작가가 느낀 감정은 <수치심>이 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자식이 앞서 죽으면 그 엄마는 자신을 잡아먹은 사악한 요괴로 불리었을 만큼 이웃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왔다. 어렸을 때 들은 그 흉측한 이야기를 상기하며 자신의 경험과 동일시하는데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주변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무엇일까. 가장 가까운 딸과도 이전과 다른 거리감을 느끼는 그에게 따뜻한 공감보다는 함께 있다는 믿음과 기다림이다. 어떠한 위로의 단어보다 편안함을 느끼며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옆에 있어줄 때 그는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우리는 간혹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며 자신의 경험을 말하거나 혹은 조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의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준비되지 않는 말은 아픔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작가의 가족들처럼 함께 있어주되 먼저 마음을 열기까지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까? 


통곡에 받쳐 며칠 동안 참던 울음에서 그는 신에 대한 분노를 말한다. 그 고통의 순간에서 신에게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고 죽음의 이유를 찾으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음을 알아버린 때 그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식사를 거부하며 술과 안주거리로 몇 달을 보내며 베란다 앞에서 뛰여버 릴까 몇 번이고 생각도 한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멀리서 자신을 사랑과 믿음으로 함께하는 딸, 사위 손자들을 생각하며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꿋꿋이 버텨낸다.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내면에서 올라오는 죽음과 그 공포를 의식적으로 밀어내며 삶의 의지를 되찾게 도와준 것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부산 앞바다로 여행을 떠나며 왠지 모를 마음의 전환을 느낀다. 그러고선 이전과 다른 감각에서 떠올린 외아들의 죽음은 분노가 아니라 그리움으로 바뀐다. 이제 외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애도가 시작된 것이다. 비탄에 잠겨 슬퍼해도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자신과 가족들을 작가는 보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직면의 한 과정이라 말한다. 직면은 치유의 작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자신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수용할 때 우리는 치료자를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치유의 작업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는 점차 죽음의 받아들임과 동시에 회복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작가 박완서가 그 치유의 과정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점은 가족들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볼 때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는 한 수녀의 권유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수녀원에서 생활한다. 속세를 떠나 자연이 제공하는 쉼터에서 산책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아픔을 털어놓는다. 가족적 고비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죽음의 문제를 신앙으로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말씀을 통해 듣기도 한다. 아들의 사진 앞에서 꽃다발을 건네며 물 컵도 놓으며 추모하고 자신을 위로를 한다. 울고 싶을 때 울고 기뻐할 수 있을 때 웃으니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가슴 속에 꽁꽁 싸매온 아픔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내적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는 치유적 관점에서 하나의 해소 과정이다. 그 동안 마음에 쌓인 아픔의 응어리를 사람들과 대화하며 털어내고 산책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며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 바로 치유의 중요한 매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으로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내적 에너지를 얻는다. 마지막 송별연에서 보면 그간 사람들에게 소홀이 했던 점을 말하거나 잘못된 행동과 태도들을 반성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춤과 노래를 즐기며 마음의 정화를 경험한다.


이 글은 우리가 상실과 충격을 경험한 이들이 그 첨적의 고통에서 서서히 극복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는 문제의 발견-직면-해소-재통합으로 이어지는 치유적 패러다임이 있고 여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이 가족애, 종교적 신념과 이웃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신실히 믿어왔던 종교적 가치관이 붕괴될 때 삶의 방향 또한 함께 무너질 수 있고 주변 이웃들의 동정과 따뜻한 위로가 작가에게는 큰 위안이 되기보다는 수치심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다. 작가는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고 먼저 말을 건넬 수 있기까지 옆에 있어주며 충분히 기다려주었던 가족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그 침묵과 공백의 기간이 그에게 애도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통로이자 치유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슬픔을 딛고 홀로서기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ㅡ 책 읽은 기간 및 작성일 : 7월 1일 ~ 7월 10일 

    책 구입 처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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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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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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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18 21:20 신고

      읽고 쓰기 과정 중에 있는데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도 열심히 적다보면 익숙해지겠지요. : )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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