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2인용 독백 - 김효나

2018.04.03 14:45

2인용 독백 - 김효나


 누군가 떠난 빈자리를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사랑하는 연인이었다면 비루 말 할 없이 큰 슬픔일 것이며 그 통곡을 혼자 고스란히 참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의 흔적을 하나씩 지우고 남은 소중한 추억은 앞으로 살아간 자신에게 성숙의 의미로 남을 테지만 이별 후 잔상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비루 견디기 힘든 상처이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친구, 가족 그리고 나를 아는 이들도 역시 저마다 이별의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꺼내지 않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감추고 있다. 나 역시 꽁꽁 감춰둔 이별의 슬픔을 기록이나 고백으로 들춰보려하면 어느 덧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기억이란 그런 성질을 지녔다.


첫 비평문 과제물로 김효나 2인용 독백을 추천 받았을 때 나는 무척 기대했다. 온라인에 누군가 올려놓은 책의 좋은 문구를 먼저 만나보았고 책을 받자마자 바로 읽었다. 그리고 천천히 조용하게 문장 하나하나를 가만히 읽었다. 작정하면 빨리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그렇게 읽지는 않았다. 어느 문장을 꽤 오래보았고 어느 문장은 미리 만나보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읽고 또 읽었다. 미술대학에서 도자공예과를 전공한 작가, 이 작가는 기존의 정형화된 문장 형태에서 벗어나 과거의 기억을 분열된 독백체로 자신만의 문장을 표현한다. 곳곳에 진한 그리움이 있고 상실의 통증도 있었다. 과거 이별의 흔적이 현재의 삶에 당도했을 때 발생하는 낯선 감정은 떠난 누군가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지난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이기도 했으며 희미해진 장소나 낡은 물건이기도 했다.


“피곤했을까. 아마도. 넌 이삿짐을 거의 한 달 동안 꾸렸다고 했잖아. 맞아, 큰 집이었으니까. 방이 세 개나 되는. 네가 이사 다녔던 집 중에 가장 큰 집이었지. 그래 그럴 수밖에. 누군가와 함께 살았었으니까. 이 년? 응. 이 년. 그리고 년 일 년을 더 살았지? 응. 일 년. 그러면 총 삼 년 을 산 거네. 그런데 마치 삼십 년을 산 집처럼 그 집이 지겨워졌어. 도망치듯 떠나야 했어. 그럴 수 밖에. 누군가와 함께 살았었으니까. 그가 먼저 떠났었으니까.” (이사, 7쪽)


3년이되 30년 같았던 그 집에서 이사하기 위해 짐을 꾸리는 인물의 독백은 헤어진 이성으로부터 결별의 종착지를 향해 떠나가는 이방인을 상상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며 단순한 이별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어떤 글은 상실의 이유를 찾지 못하며 여전히 그 곳을 맴돌고 있구나 생각했다.


한 없이 낮은 어조로 가녀리게 이어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자기독백은 인상적이고 주운 기억, 티브이, 소라알갱이, 으아 등에서 암시되는 기억 속 언어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갔다를 여러번 띄여쓰며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스토리와 연결하여 묘사한 글에서 그리운 아버지를 상상하고 먼 고향에 있는 나의 가족을 떠올렸다. 티브이 판매원과 대화에서 의도하지 않게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내면에 꽁꽁 감춰둔 슬픔을 타자에게 조금씩 표현해내기 위한 최초의 시도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 시작을 <핏빛 분노>로서 격한 감정을 날카로운 단어로 해소하여 끝내 죄책감을 느꼈는지 <모르는 대화>에서 자신을 타자와 분리하고 회피해버리는 듯 했다. 아무렇지 않게 내 뱉은 말처럼 보였지만 이 곳에는 다양한 감정이 텍스트 안에 녹아있었다. 나는 그 온도를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형태의 문장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감각으로 표현하고 싶어졌다.


“지나간 많은 사랑이 내 주위를 유령처럼 맴돌아. 깊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오년 전의 그 애가 옆에 누워있고 점심을 먹다 고개를 들면 십년 전의 그 애가 얇은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고 어둑해지는 창을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가면 거기엔 십오 년 전의 그 애가 긴팔로 내 어깨를 둘러.” (문득 종아리를 스치는 고양이처럼 문득, 154p)


최근에 지인들과 이별과 상실을 주제로 서로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에 담아둔 흔적을 꺼내기로 했다. 누군가와 나누면 덜 슬퍼지고 조금 더 괜찮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흐려지며 충분히 감당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위로를 받았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에세이집도 그런 존재다.


“인화된 필름의 검은 면을 칼카로운 것으로 긁어 ㅉ랍은 단어를 적어나가면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방과 후, 빛, ㄱ억, 풍크툼 이런 단어들이었을텐데요, 그 중 가장 자주 등장했던 단어는 ㄱ억이었던 것이 ㄱ 납니다. (문득 종아리를스치는 고양이처럼, 154p)


선명했던 기억도 글을 쓰려하면 숨어버린다. 해야 할 말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 정말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때 에세이집을 읽는다. 나와 동일한 감정을 겪었을 그 주인공의 마음을 읽다보면 눈물이 난다. 나도 많이 힘들었다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지는게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해 본다. 




독서기간 : 2018.03.27~ 03.30

구입처 : yes24


2인용 독백
국내도서
저자 : 김효나
출판 : 문학실험실 201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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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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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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