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인물화 비교

2017.09.01 16:28

토니의 칼럼

·서양의 인물화 비교


인간을 그림에 담아내는 인물화는 풍경화와 산수화등과 다른 오묘한 느낌을 가져다준다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고 하는 욕구와 맞물려 더 나은 외모를 가지려 노력하고 현재까지도 외모는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초상화에게서 절대적 미의 기준이나 자신의 외모와 비교하면서 다양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더욱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나, 사람들이 열광해오던 한 인물에게서는 아우라가 품어져 나온다.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지만, 한 장의 그림은 실제 그 인물과 대면하고 있는 느낌을 주면서 그 의 인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는다이전의 시대는 사진기의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몇 장 남겨지지 않은 인물화는 더욱 가치가 크다. 사진은 없었지만 마치 사진처럼 정교하게 그려진 서양의 그림들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그 기법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한, 동양의 인물화들은 붓의 정교함, 선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본론에 들어가 인물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동양과 서양의 인물화에 대해 비교를 하고자 한다.


1. 인물화의 개요

인물화는 인류가 조형행위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표현하는 작업은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물화는 역사적 기록이자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앙·생활·사상·문화 등 각 시대의 관심사가 인물화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다.

 

2. 동양 인물화의 종류

(1) 초상화

초상화는 특정 인물의 자태를 그린 그림이다. 후손에게 교훈의 의미를 주려는 목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주로 진전·사당·진영각 등 특정 장소에 봉안하고 제사에 사용된다. 종류로는 어진·공신상·기로도상·일반사대부상·여인초상·승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초상화는 인물화의 핵심적인 주제로 각 시대 인물화의 특징이 집약되어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어진은 임금의 초상화로서, 어용·수용·진용·성용·왕용 등으로 불리어졌다. 어진을 제작하는 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어진도감이라는 임지조직을 구성하여 어진제작의 전과정을 담당하였다. 고려시대의 어진은 현재 전하는 것이 없고, 조선시대에는 19세기에 제작 된 태조어진·영조어진·철종 어진등이 남아 있다.

 

(2) 고사인물화

고사 인물화는 말 그대로 고사를 주제로 한 인물화이다. 고사란 구체적으로 경서·역사적 사실· 문학작품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서, 모범이 되거나 교훈이 되는 인물의 행적을 그린 것이다. 고사 인물화는 초상화와 더불어 초창기에 유행했던 인물화로서, 둘다 교화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있다.

경서의 내용을 그린 고사인물화로는 빈풍칠월도·무일도 등이 있다. 빈풍칠월도는 <시경>빈풍의 내용을 그린 것이고, 무일도는 <서경> 무일편의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모두 백성이 생업에 종사하는 고통을 임금이 인식하여 정치에 힘쓰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대부분 중국의 고사를 본따서 제작한 것인데, 고려시대부터 >해동기로회도>와 같이 중국의 고사인물화를 환국화하거나, 금궤도 같이 아예 <삼국사기>의 내용을 그린 것도 있다. 문학작품을 표현한 고사인물화로는 어초문답도·귀거래사도등이 있다.

 

(3)도석인물화

도석인물화는 도교와 불교에 관계되는 인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넓은 의미의 도석 인물화는 예배화를 포함한 도교와 불교의 전체 그림을 가리키나, 좁은 의미로는 예배용이 아닌 감상·교화·길상 등의 목적으로 제작된 그림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도석인물화로 한정하여 다루고자 한다. 도석인물화는 신선도, 선종화가 주류를 이룬다. 신선도는 신선을 소재로 삼은 그림으로, ··수의 길상을 기원한다. 우리나라에서 즐겨 제작되었던 신선도의 종류를 보면, 군선경수반도회도, 팔선도 드이 있다.

 

(4) 풍속화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상을 그린 그림이다. 신분사회의 풍속화는 신분의 위계에 따른 사인풍속화·서민풍속화·시녀인물화로 나눌 수 있다. 사인풍속화는 사대부의 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시회도·설중방우도 등이 전통적이인 주제이다. 서민풍속화는 일반 백성들의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풍속화의 대부분을 차지 한다. 궁중에서 왕이 교화용으로 제작한 경직도가 서민풍속이다. 사녀인물화는 궁중 여인들의 생활이나 자태를 그린 그림을 kfl키며 미인도라고 불리운다. 초기에는 궁중 여인들이 지녀야 할 규범을 비롯한 유교적인 덕목을 깨우쳐주는 교환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나, 점차 여인들의 아름다운 자태와 풍모에 관심이 옮겨지게 된다.

 

(5) 산수 인물화

산수인물화는 산수 속에 인물이 부각된 그림이다. 인간이 을 관조하여 서로 일체가 되는 경지를 그린 그림으로 그 배경에는 무아일체의 도가적인 자연관이 자리잡고 있다. 선비가 달을 보면 고사관월도, 폭포포를 보면 고사관폭포, 세상의 세상의 때가 묻은 발을 개울물에 싯으면 고사탁족도 등이 된다.

 

3. 서양 인물화의 종류

(1) 초상화

두부의 방향에 따라 정면상, 측면상, 반측면상 등으로 구분하고 자화상은 작가가 스스로 그 초상화이다. 한 인물을 그린 것을 단신상, 여러 인물을 그린 것을 군상, 어떤 집단을 그린 것을 집단 초상화라 한다.


(2) 종교화

에배, 포교 등의 종교 활동에 수반하여 전개되는 미술을 말하며 신 혹은 신적 인격의 형상화 자체가 경배의 대상이 된다. 종교가 인간 생활을 강하게 지배하던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중요한 미술품의 대부분이 종교로부터 비롯되었다. 유명한 종교화에는 '최후의 만찬', '최후의 심판', '성모자상' 등이 있다.


(3) 역사화

역사상의 사건을 주제로 표현한 회화 신화, 전설 등의 사건을 그린 것으로서 광의의 역사화에 포함된다. 역사화의 의의는 사실에 충실하기 보다는 사건의 역사적인 중요성이나, 장면의 극적인 구성에 있다.


(4) 풍속화

일상생활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계층의 차이에 따라 서민적 풍속화, 귀족적 풍속화로 구별된다. 18세기에 프랑스의 와토가 궁정의 우아한 생활을 그렸고, 영국의 호가스는 상류사회의 어둡고 퇴폐적인 측면을 풍자적으로 표현하였다. 19세기에 이르러 로트레크에 의해 당시 파리의 하층민들의 삶이 제재로 이용했다.


(5) 나체화

알몸의 사람을 그린 그림. 신체의 일부를 천 따위로 가린 것도 포함한다. 나체의 표현은 선사시대부터 있어 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매우 성했다. 중세에서는 종교적 이유에서 나체화가 거부, 르네상스 이후 다시 성했다. 나체화를 많이 남긴 작가로는 로코코 시대의 와토, 부세 등이 있고 19세기 이후에는 앵그르와 르누아르 등이 유명하다.


(6) 착의화

옷 입은 사람을 그린 그림. 나체화에 대비되어 쓰이는 명칭이다.


5. 동양과 서양의 인물화 비교

윤두서의 자화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1) 공통점

(1) 실제와 똑같은 자화상

서양의 화가가 그린 많은 자화상이 있었지만 윤두서의 자화상처럼 처절하도록 자세히 그린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윤두서는 모든 것을 자세히 보고 정확히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진실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윤두서가 얼마나 지독할 정도로 사물을 열심히 관찰했는지는 그의 자화상에서 알 수 있다.

모나리자는 지극히 정밀하게 그려진 사실주의 작품이다. 모나리자라는 한 인간을 바라보며 그 내면의 느낌을 리얼리즘으로 표한 한 것이다.

연기처럼 사라지다의 뜻의 스푸마토 기법은 사물이나 색채의 윤곽선을 마치 안개에 싸인 것처럼 재현하여 원거리감과 공간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화면 전체에 깊이감을 주는 것이다.

기하학적 원근법의 견고성이 화면의 조화를 해친다고 단정했던 다빈치는 윤곽을 분명히 하지 않고 오히려 없애거나 아주 연하게 처리하였고 그 결과 전체 화면에 독특한 분위기의 온화함이 나타나면서 모나리자의 사실성을 표현하였다.


(2) 미완성 작품들이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면 조선시대의 유교윤리나 보편적 미감(美感)에서 벗어나 있다. 사대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 일부를 떼낸 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두서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은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의 외할아버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바로 이 대목에 윤두서 자화상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이같은 의문을 품어온 오주석 한신대강사(한국회화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결정적인 자료 하나를 찾아냈다. 1937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사료집진속’. 거기엔 놀랍게도 목과 상체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윤두서 자화상의 옛사진이 들어있다. 그 사진 속에서 윤두서는 도포를 입고 있다. 단정하게 여민 옷깃과 정돈되고 완만한 옷주름, 어질고 기품있는 얼굴. 현존하는 자화상 실물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그러면 상반신 윤곽선은 어떻게 감쪽같이 없어진 것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상체를 그리는데 사용했던 유탄(柳炭). 버드나무 숯인 유탄은 스케치연필에 해당한다. 접착력이 약해 수정하기는 편하지만 대신 잘 지워지는 약점이 있어 조선시대엔 보통 밑그림용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유탄으로 그린 상체는 지워지고 먹으로 그린 얼굴만 살아 남은 것이다. 오씨는 윤두서가 미처 먹으로 상체의 선을 그리지 않아 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후대에 전해오다 관리소홀로 지워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미숙한 표구상이 구겨진 작품을 펴고 때를 빼는 과정에서 표면을 심하게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윤두서의 자화상은 미 완성작이었다. 두 귀가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술성마저 미완성인 것은 아니다. 콧구멍 코털까지 그려낼 정도로 철저한 윤두서의 사실성을 오씨는 성실성의 산물이라 평가한다. “실물과 터럭 한올이라도 다르다면 그게 어찌 윤두서 자신의 얼굴이겠는가. 이 사실성은 그의 냉엄한 관찰에서 나온 것이며 그 관찰은 내면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자 선비 정신의 표출인 것이다.”

모나리자의 작품은 부인의 나이 24~27세 때의초상이며,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았을 때 이 미완성의 초상화를 가지고 갔었는데, 왕에게 4,000에큐에 팔려 퐁텐블로성에 수장되었다. 때때로 세정도하고, 광택용 니스를 바르기도 한 관계로 전체에 균열이 생겨 제작 당시의 시원스럽고 여유 있는 필치는 볼 수 없다

다 빈치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하여 악사와 광대를 불러 부인의 심기를 항상 즐겁고 싱그럽게 함으로써 정숙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 편안한 손 등 신기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기 작가 바사리에 따르면, 이 그림은 4년이 걸리고도 미완성인 채로 끝났다고 한다.


2) 차이점

구분

모나리자

윤두서의 자화상

제작시기

15세기 경

1503~1506

소장

루브르미술관

해남군 윤형식(개인)

작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윤두서

재질

캠버스

종이

크기

세로 77, 가로 53

가로 20.5, 세로 38.5

종류

패널화

자화상

화법

유화 기법

구륵법

기술

스푸마토 기술

없음

구도

삼각구도

없음

특징

이 초상은 눈썹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는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서 눈썹을 뽑아버리는 일이 유행하였다.

또한, 콘트라포스트 기법을 사용하여 모나리자는 몸의 4분의 3만 보이게 앉아 있으면서 얼굴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특징을 볼 수 있다. 또한, 운동감을 주는 자세를 볼 수 있다.

윗부분이 생략된 탕건, 정면을 응시하는 눈, 꼬리부분이 치켜 올라간 눈매, 잘 다듬어져 양쪽으로 뻗친 구레나룻과 긴 턱수염, 약간 살찐 볼, 적당히 힘주어 다문 입술에서 엄정한 성격과 조선선비의 옹골찬 기개를 읽을 수 있음.

배경

금방이라도 범람할 것 같은 느낌의 호수

직선적인 물길

인간의 개척을 다리를 통해 표현

없음

 

결론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부리부리한 눈매, 거울을 보고 그린 듯 한올 한올 사실적이면서 불타오르는 수염, 넘치는 생동감과 파격적인 생략은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또한 목과 상체가 없어서 더욱 무섭게 했다.

이 그림을 통해 이 시대에 고결한 정신으로 살다간 한 사람의 삶와 정신이 느껴지고 털 한가닥도 놓치지 않고 정면으로 자신을 보는 힘을 통해 조선 선비의 지조를 느껴볼 수 있었다.

모나리자의 그림에서는 스푸마토 기법에서 나오는 특유한 신비로움을 느껴 볼 수 있었다. 특히 모나리자의 미소는 인간에 대한 오묘한 감정을 표현함으로서 나로 하여금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들었다. 제작 시간이 4년 이상이 걸렸고,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작품이었던 만큼 작품에서 나오는 아오라를 느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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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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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 중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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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9 16:51 신고

    대학시절 예술교양과목시간에 제출한 레포트를 발췌했습니다. 따로 출처는 적지 않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ㅡ 주인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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