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017.08.11 11:41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학부 졸업을 둔 마지막 학기는 나의 사상적 변화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면서 대학 내 여러 정치강의를 듣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회학과 수업을 통해 '푸코','뒤르케임','막스 베버' 등 여러 저명한 학자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을 탐독하고 발자취를 따르는 것은 봄이 찾아와 유순해진 벗꽃나무 길을 걷는 것과 같이 학문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이 던지는 난해진 질문들에 답을 해나감에 생각은 풍부해지고 사고는 깊어질 수 있었다. 사실 사회학과 박정호 교수님의 철저한 수업 준비와 이해력 높은 강의 덕분에 타과 학문일지라도 장벽 없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강의 형태가 ppt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이해는 쉬웠지만 '공부'라는 이름에 값을 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파고들어야 했다. 영화 <트로이>를 즐기기보다 호머의 <일리아드>를 힘들게 읽는 것. '공부'는 스스로 힘들게 읽고, 비판하고, 성찰하는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인상 깊었던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을 꺼내들었다. 푸코는 자신의 책에 대해 "생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쓰일 수 있는 연장통"이 되기를 바랬다. 그의 바램에 보탬이 되고자 도서관을 갈 때나 커피숍을 갈 때에 책 가방에는 항상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어댔지만 기대와 달리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성경책을 읽는 것 같이 딱딱했으며 짧은 지식 때문인지 한 두페이지를 넘기는데 20여분이 걸리기도 했다. 여러 방침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기도 하고 관련 서적을 읽어나가면서 마침 내 어제 완독을 해낼 수 있었다. '감시와 처벌'의 서평만큼은 나와 비슷한 어려움에 놓인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책에 대한 소개와 여러 배경지식을 포함하고자 한다. 

이 책은 프랑스식 글쓰기의 전형적인 방법인 귀납적 글쓰기 방법으로 서술되어있다. 주장을 서두에 적고 이를 논증하는 방식이 연역법적인 글쓰기라면 여러 사례와 내용들을 분석하고 설명한 후 한 참뒤에 주장을 적는 방법이 귀납적 글쓰기이다. 읽다보면 자신의 생각들이 나오기 때문에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겠지만 과학적이고 설득력이 높아 논평에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연역적 방법에 익숙해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은 이 책의 초 중반 형벌과 감옥에 대한 사례를 보고 역사책으로 혼동 할 수 있으며 부족한 인내력 탓에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논점을 보기도 전에 독서를 포기해버릴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철학적 이론 

<지식과 권력>에 푸코는 권력의 정체를 폭로하고, 거대한 권력구조를 폭파할 수 있는 폭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근대정신과 새로운 재판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적어 감옥, 죄수복, 쇠사슬, 처형장 등의 물질적인 형태 뿐 아니라 범죄, 형벌, 재판, 법률 등의 추상적인 문제들을 다르면서 감옥과 감시 체제를 통한 권력의 정체와 전략을 파헤친 것이다. 


한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떨기 백합에서 천국을 본다 

감옥의 사례를 통해 거대한 권력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이다. 지식과 관력이 인간과 신체를 어떻게 처벌하고 감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타자(다른 사람)의 관계 없이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통제하려는 세력. 이는 사회적 비대칭 관계를 만들어내고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을 지배해나가는 과정을 알아가보자.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끊는 기름, 지글지글 끊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 끌여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 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본문 중)


푸코는 15세기 공개적 고문의 묘사를 책의 서두에 설명하면서 절대군주의 위력을 가시화하기 위해 잔인한 형벌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백성들이 고문의 형태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이 뜻하는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그러다 단두대가 나타나면서 사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게 되고 18세기 후반기에 접어 들면서 감옥이 보편화되고 범법자에 대한 잔인한 고문과 공개적 처형은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게 되는 부분에 관심을 갖는다. 이제 범법자는 공개적 폭력과 고문을 당하는 대신 강제노역을 하도록 도로작업이나 운하공사에 동원하게 되고 격리수용된 감옥에서 엄격한 일과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고 끊임없이 감시받는 죄수들이 되는 변화과정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규율'이 작용하고 이제 권력은 이제 규율을 통해 인간의 육체를 통제해나가는 다는 것을 폭로한다. 

규율을 통해 권력의 작용지점은 바로 '신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 공개처형대상도 타격은 '신체'였지만 교화 역시도 '신체'가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은 '신체'를 훈련시키는 것이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광고 문구처럼 사람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알아버리는 '규율의 내면화'를 갖는다. 이는 앞으로 권력행사에 유연한 신체로 탈바꿈해가는 것이다. 푸코는 공장, 학교, 병원 등 여러 곳에서 이러한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잘 길들여진 몸'을 창조해가는 것 이것이 부르주아의 권력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 푸코는 이러한 권력을 '규율적 권력'이라고 말한다. 



일망감시장치의 의미 

푸코는 규율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을 설명한다. 파놉티콘을 중심으로 감옥이 둘러쌓여있는데 내부의 간수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의 죄수들은 판옵티콘의 안을 드려다 볼 수 없다. 따라서 죄수들은 판옵티콘 내부의 간수들이 몇 명이 있는지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지를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되고 된다. 권력이 이전에는 가시적인 폭력과 그 공포성으로 국민들을 통제해왔다면 이제는 권력은 자기 모습을 내보이지 않으면서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판옵티콘 앞에서 죄수들은 이제 스스로를 통제하는 '규율'을 갖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기간에 대학교수가 앞 쪽에 배치 된 교단쪽보다 우리들 눈에 벗어난 뒤쪽에 서서 감독한다면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은 뒤에서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으로 컨닝을 스스로 자제하게 된다. 즉, 규율에 맞게 행동을 해나가고 이는 교수가 원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푸코의 메세지는 지식과 권력을 통해 개인에게 작용하는 권력의 형태를 분석했지만 결국 푸코의 메세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인간에게 소중한 가치란 무엇이고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에 있다.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푸코의 질서가 무정부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무정부주의가 갖고 있는 동전의 다른 면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렬한 옹호와 그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치열한 비판이다. 그 어떤 가치보다 선행하는 것이 민주주의며 그 민주주의의 중핵을 이루는 것이 인권이라고 하면 푸코의 사유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인권의 정치에 새로운 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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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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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 중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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